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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monster

역사상 최악으로 남는 올림픽 5선

by 정몬 2016.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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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에 한번씩 전세계가 하나가 되는 올림픽이 개최를 합니다. 매 대회마다 각종 이슈나 스포츠 스타가 탄생을 하곤 하는데요, 수 많은 대회를 진행하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회가 정말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역사상 최악이라고 기록이 되는 5개의 올림픽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1904년의 올림픽은 당초 세인트루이스가 아나라 시카고에서 개최될 예정이였습니다. 하지만, 시카고와 유치경쟁을 벌이던 세인트루이스는 개최지 선정 결과에 불복해 항의를 멈추지 않았고, 당시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까지 세인트루이스의 편에 서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개최지를 하라고 압박을 했다고 합니다.  결국 IOC는 세인트루이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하지만,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는데요 그이유는 20세기 초반 교통 기술 여건상 세계의 선수들이 세인트루이스에 입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 12개국 630명의 선수만이 참가하게 됐었습니다. 또 당시 같은 기간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리던 세계박람회에 밀려 심지어는 세인트루이스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경기에서도 세인트루이스는 최악이였는데요, 당시 마라톤 결승에서 미국 선수 프레드로츠가 1위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경주 도중 지나가던 차를 얻어타고 상당한 거리를 이동한 사실이 발각이 되어서 큰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우리나라의 손기정 선수가 한국인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한 것으로 유명한 올림픽입니다. 하지만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히틀러의 나치 정권에 의해 올림픽의 의미가 퇴색됐었습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기 이전에 개최가 정해졌지만, 유치 결정 2년 후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IOC가 베를린에서의 올림픽 개최를 IOC는 결정을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히틀러와 나치 정권의 선전의 장으로 악용된 베를린 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한 세계인의 화합’이라는 올림픽의 취지에 맞지 않는 최악의 올림픽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1968년의 올림픽을 멕시코시티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한 것은 아직도 가장 의문으로 남아있는데요,  멕시코시티는 해발 2,240m의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대기 중 산소량이 해수면의 3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런 환경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이 선수들의 건강과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을 하였지만,  IOC는 고도에 의한 영향이 거의 없을 것이라며 받아드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IOC의 단언은 틀리게 되었는데요 공기가 적어 저항이 적어지자 비정상적인 기록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특히 육상에서 수 많은 세계 기록들이 경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멀리뛰기의 밥 비먼의 경우 종전의 세계기록 보다 60cm 이상을 멀리 뛰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 800m, 1,500m, 마라톤 등의 장거리 종목에서는 유력한 우승후보들이 맥을 못 추고 약체로 평가받았지만, 고지대에 익숙한 아프리카 선수들이 메달을 휩쓸었습니다. 하지만,당시 5,000m와 1만m에서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호주의 론 클락이 1만m 경기에서 완주하지 못하고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하게 되었고, 그 후에는 고지대 도시에서의 올림픽 개최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올림픽 자체가 실패로 보기는 힘들지만, 개최 도시에 엄청난 빚더미를 안겨준 두 개의 올림픽이 함께 선정되었습니다. 1976년 올림픽 이후 몬트리올은 10억 캐나다 달러(한화 약 8,500억 원)의 부채를 안게 됐고, 이를 상환하는 데만 3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리스의 아테네는 2004년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무려 150억 달러(한화 약 16조 7,700억 원)의 빚을 지게 됐고, 이는 국가 경제를 넘어 유럽 경제의 짐이 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SI는 IOC가 중소도시에서의 올림픽 개최를 희망한다면, 2002년 한국과 일본에서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도록 한 국제축구협회(FIFA)의 선례를 따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IOC가 1996년 올림픽을 애틀란타에서 개최한다는 결정을 내린 순간부터 의문은 따라다녔습니다. 12년 만에 올림픽을 다시 미국에서 개최하는 것은 IOC의 원칙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죠. 훗날 이는 애틀란타의 유력 경제인들이 IOC 위원들을 뇌물로 포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시작부터 비리로 얼룩진 애틀란타 올림픽은 경기 일정을 짜는 데도 실패했습니다. 보통 하계 올림픽이 열리는 7~8월 애틀란타의 평균 기온은 섭씨 32도에 달한다고 합니다. 반면 9월에는 27도까지 떨어져 경기를 치르기에는 9월이 더 적합하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하지만 IOC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최고기온 38도에 달하는 무더위에 선수들의 경기력은 저하되었습니다. 또한 날씨만이 애틀란타 올림픽의 문제가 아니었는데요, 열악한 대중교통과 복잡한 고속도로 체계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줬고,  올림픽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시기에 경기장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2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도 발생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상 최악으로 남는 올림픽 5선을 알아보았습니다. 재미있게 보셨다면, 공감과 공유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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